나오시마 가는길- 우순옥

나오시마 가는길- 우순옥

나오시마 현대미술관 Benesse House Naoshima Contemporary Art Museum >>

나오시마 가는 길 / 우순옥



올 겨울이 끝나갈 무렵, 일본을 여행했다. 나오시마 현대미술관과 아와지시마의 물의 사원, 그리고 교또 근교에 있는 일몰 개관 미술관을 둘러볼 예정이었다. 이들은 모두 Tadao Ando 의 건축물이다. 이중 특히 일본의 지중해라고 불리는 세토나이해에 떠있는 작고 아름다운 꿈의 섬, 나오시마에의 기억은 지극히 고요하고 편안한 휴식의 시간들로 내 마음속의 섬처럼 오롯이 남아 아직도 내게 그 사색의 여운과 향기를 안겨주고 있다.

1992년 오픈한 나오시마 현대미술관은 Tadao Ando의 건축집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으나, 이번 방문의 결정적인 요인은 최근 그 섬에서 Tadao Ando와 James Turrell이 함께 작업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Minamidera라고 불려지는 그 작업이 나오시마 문화촌의 오랜 숙원 사업인, 건축과 자연과 예술 그리고 문화 역사의 총체적인 안목 하에 계획 실현된 ‘Art House Project’ 의 하나라는 점 또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당시 나는 서울의 아트 선재센터와 미술관 바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韓屋 프로젝트’를 막 끝낸 상태였고, 이후 우연히 알게된 나오시마의 계획들이 어느 특정 장소에 대한 나의 작업 컨셉과의 유사성에 놀라워 결국 그곳을 찾아가게 된 것이다. Ando와 Turrell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만났을까? 이 두 사람은 내가 관심 있어 하던 작가이고 그러기에 그들이 만나 하나의 작품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내게 적잖은 흥분을 안겨주었다. 알맞은 공간 속에 존재하는 알맞은 예술,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그런 공간을 꿈꾼다는 것은 어쩌면 예술의 영혼, 혹은 정신이 살 수 있는 그런 영원을 꿈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만나 서로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문학에서도 예술에서도 만나야 할 사람은 이렇게 꼭 만나지는구나! 나는 그동안 진실로 그 누구를 만났을까? 아니면 아직 만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런 시시콜콜한 생각을 하며 설레는 마음을 안고 나오시마를 향해 오까야마 행 비행기를 탔다.

작은 오까야마 공항을 빠져 나오니 마치 이른 봄 제주도의 날씨와 비슷한 부드러운 미풍과 비스듬히 내리쬐는 온화한 빛들이 우선 반긴다. 어디 한적한 시골 휴양지에 내린 듯한 기분이다. 여기서부터 나오시마로 가는 길은 여러 번 차를 갈아타야 하므로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셔틀버스를 타고 오까야마역 까지 나오는 길목을 따라 벌써 피어나기 시작한 연노란빛 꽃망울들이 여행의 반가움을 더해준다. 오까야마역에 내려 우노 항구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한참을 서성였으나 그 느린 시간들이 외딴 섬에 가는 기분을 더욱 고조시켜 오히려 여유로운 마음으로 느긋이 즐겼다. 늘 혼자 하는 여행이었으나 이번에 함께 동행하게 된 동생과 벌써부터 먼 장래의 건축가를 꿈꾸는 귀여운 조카 元鳳 이 뜻밖의 즐거움까지 전해주니 더욱 좋다. 우리는 버스 외곽에 무지개 그림으로 디자인된 시부까와행 Ryobi버스에 드디어 올라탔다. 오까야마 시내를 가로질러 약 한 시간쯤 달렸을까? 조촐한 모습으로 우노 항구가 보였다. 따뜻한 커피 한잔의 기다림 동안 바다 저편 섬을 두리번 기웃거려본다. 가까이 다가오니 여태까지의 느긋함은 사라지고 불현듯 서둘러 그 섬에 가고 싶어졌다. 출발을 기다리던 페리호는 몇 대의 자동차와 도시에서 장을 보고 들어가는 듯한 몇몇의 섬 주민들, 그리고 우리 세 사람만을 태우고 나오시마로 향한다. 덩그러니 썰렁한게 배는 더욱 커 보였다. 그래, 이 겨울에 누가 한적한 외딴섬을 여행을 하랴. 선창 밖을 내다보니 멀리 봉긋이 수줍은 듯한 모습으로 나오시마가 보이고 정갈한 섬의 외형이 벌써부터 내 마음속에 무언지 모를 그리움을 일게 한다.

잔잔한 수면 위로 천천히 이끌어 지기를 20분쯤 지나 배는 나오시마의 호젓한 미야노우라 항구에 도착했다. 마을은 고요하고 소박하다. 우리 어느 여행지에서나 볼 수 있는, 손님을 불러모으기 위해 현란하게 세운 그 흔한 간판 하나 없다. 나지막하게 단정한 작은 집들과 울창한 나무들, 그 사이로 정겨운 소로만이 눈에 띤다. 부두에 닿아 철썩거리는 바닷물 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여유롭다. 이곳은 그 유명한 건축가 Tadao Ando가 지은, 일본에선 꽤 의미 있는 현대미술관이 있고 또 한편 그에 버금가는 문화 휴양지로서의 나오시마 문화촌이 형성된 곳이 아닌가? 그런데도 10년이란 세월이 지나 있는 법도 한 도시의 공해가 전혀 침입한 흔적이 없다. 부질없는 욕망과 비대한 욕심의 군더더기가 어디서고 발견되지 않는다. 어디 하나 훼손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작을 섬마을 그 자체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신선함인가!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서 이들은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이처럼 조촐하게 적막한 모습과의 만남은 정말 오래간만이다. 여행길 오후에 드디어 만난 이 호젓이 고요한 섬, 니오시마가 벌써부터 내 마음을 달래준다. 담백한 즐거움.

나오시마 미술관에선 우리를 픽업하러 나온다기에 서울서 예약할 때 미술관 홈페이지를 보고 배편 도착 시간을 알려주었더니 작은 셔틀버스가 정확히 항구에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세 사람만을 태운 미술관 직원은 마을의 풍경을 친절히 설명하면서 지름길을 피해 일부러 옛마을(Honmura: 本村)을 거쳐 섬의 남끝단에 위치한 미술관에 도착했다. 바다를 굽어보며 언덕 위에 자리잡은 미술관은 탁 트인 시원한 전경이 가히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햇빛은 머리 위에서 눈부시게 빛나 있었고 오후의 바닷바람이 강하게 불어왔지만 기분이 너무 좋아 탄성과 함께 양팔을 벌려 온몸으로 안아 쐬며 소로를 따라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미술관 안의 호텔에 묵을 예정이다.



나오시마 현대미술관은 베네세 하우스(Benesse House)라고도 불린다. 출판업을 하는 하던, 나오시마 문화촌 창설자 Tetsuhiko Fukutake씨는 고단하고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의 몸과 마음을 달래줄 꿈같은 섬을 건립하고 싶었던 오랜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 1987년 이후 아름다운 섬 나오시마를 택해 체계적으로 Ando를 만나 건축, 자연, 예술, 그리고 역사와 문화 환경에 대하여 수많은 토론과 생각들을 교환해가면서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해갔다. 그 뒤 1년 후 Tadao Ando에 의해 착수된 Benesse House는 1992년에 미술관 본관이 그리고 1995년엔 본관과 연결하여 그 섬의 꼭대기에 멋진 별관(Benesse House Annex)이 완공됐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 별관을 미술관 안의 호텔이다. 이것을 그야말로 건축과 자연과 예술이 하나로 융합하여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안목 하에 탄생된 나오시마 문화촌 형성 컨셉의 핵심이다. 미술관 본관의 2층에도 이미 지어진 객실이 있지만 따로 떨어진 이 별관이야말로 빛과 공기, 물과 하늘, 그리고 바람과 나무… 등 자연과 공생하는 Ando건축의 핵심적인 사상과 존재감을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게 한다.

총 6개의 객실뿐인 별관의 방은 미술관에 소장된 작가들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나는 하루는 Richard Long 방을, 또 다른 하루를 위해서는 Miyajima방을 택했다. 프론트에(그러니까 미술관 안내 데스크가 바로 호텔 프론트 역할을 한다.) 체크인을 하고 인적 없는 한적한 바닷가의 거대한 성같은 미술관 안을 기웃거리면서 여장을 풀기 위해 바로 별관 숙소로 향했다. 미술관 2층에서 바깥으로 연결된 문을 열고 나가면 초록색 모노레일이 기다리고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모노레일이 숲 사이 소로를 따라 천천히 언덕 위로 올라가는 동안 눈부시게 반사된 해면의 광채가 내 주위를 온통 휩싸면서 돌연 천국을 향해 떠가는 착각에 빠뜨린다. 그 꼭대기 별관 중앙에선 둥그러니 마치 달걀 모양의 평면으로 납작한 분수대가 놀라움과 신선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한다. 그 타원형의 넘치는 샘물은 우리 인간의, 그리고 자연의 근원을 이야기한다. 나는 Tadao Ando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든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신선함 그의 명상적 공간이 좋다. 그 위 하늘 역시 같은 모양으로 뚫려있어 물은 하늘을 그대로 안고 있다.

그것은 마치 높은 산 정수리에 고인 자연의 순수한 에너지 같다. 분수 주변으로 객실의 외곽 벽은 연 하늘빛으로 칠해져 더욱 몽상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잔잔한 분수대의 물결이 빛을 받아 푸르스름한 벽에 어른거리니 타원형의 공간들은 마치 살아 일렁이면서 먼 태초의 기억으로 나를 안내한다. 타원의 홈 사이로 넘쳐흐르는 물소리가 깊은 산중 폭포처럼 시원한 장관을 이룬다. Richard Long객실에는 그의 드로잉이 걸려있다. 내부의 마루 바닥과 정갈하게 하얀 소품들, 푸르스름한 하늘빛의 감각이 자연과 닮아있어 편안하고 좋다. 한쪽 벽 전체가 바다를 향한 창이다. 아득한 수평선과 간간이 지나가는 여객선이 그림처럼 평화롭다. 이 방은 석양이 일품이란다. 어느새 태양은 기웃기웃 일몰의 장관을 선사하려 한다. 바로 멀리 눈앞엔 마치 밤섬 모양의 단정한 작을 섬이 마치 부처처럼 부동자세를 하고 나를 바라본다. 나도 그를 무심히 바라본다. 훌륭한 예술 작품이 그러하듯이 아무런 욕심 없는 자연은 어느 면에선 종교와도 닮아있다. 너무 아름다운 모습에선 또 그러한 절정의 순간에선 난 늘 죽음이 떠올려진다. 이승과 저승은 그즈음에서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삶과 죽음 사이에서 보이진 않으나 경계 없이 교차되는 서로의 은밀한 호흡이 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렇게 아득하고 애틋한 마음 너머 먼 풍경을 있는 그대로 그저 무심히 바라보는 것이 좋다. 그 알 수 없는 고독과 평정이 난 유난히 좋다.

간단한 차 한잔으로 피로를 푼 다음 아직 해가 있을 때 미술관을 보기 위해 가벼이 아래로 내려갔다. 우선 미술관 밖으로 나가 외곽을 둘러본 후 미술관의 외곽 벽은 아름다운 주변 환경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건물을 아주 낮게 조성했으며 볼륨 반 이상을 지하에 묻었다. 완만한 언덕을 서서히 올라가 본관에 다다를 때까지 사람들은 밑에 감추어진 미술관의 존재를 인식할 수가 없게 되었다. 마치 섬의 언덕에 숨은 신비로운 요새와도 같은 느낌이다. 때마침 멋진 일몰이 서서히 밀려와 미술관은 온통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오래 읽은 교과서처럼 이젠 더 이상 새롭지 않은 Richard Long도 CY Twombly도 Donald Judd도 이렇게 매혹적이 자연의 빛을 받으니 붉게 새 생명을 얻은 듯하다. 거대한 선박의 心室같은, 또는 어둑한 수도원 같은 미술관의 원형 중앙 홀엔 Bruce Nauman이 홀로 놓여있다. 그의 <100>은 마치 빛으로 쓴 具體詩같다. 빛이 커지고 켜질 때마다 그 문장들을 중얼거리며 낭송해본다. …Touch and Live… Smell and Die… 소리는 마치 기도처럼 장엄하게 텅 빈 공간에 메아리 되어 울려 퍼진다. 미술관 외벽 테라스엔 Hiroshi Sugimoto의 매혹적인 흑백 사진들이 바다의 양쪽 날개처럼 설치되어있다. 각기 다른 장소의 수평선을 미세한 떨림으로 잡아낸

미술관 아래 숲 속, 중국 작가 蔡國强의 작품 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중국인답게 나오시마의 가장 명당자리를 찾아 氣를 불러모으고 바로 그 장소에 여러 가지 한약재를 탄 야외 욕탕을 설치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6시 좀 지났을까, 미술관에서 마련해준 수영복과 타올 등을 들고 나무꾼의 선녀처럼 그 숲 속으로 내려갔다. 이미 해는 기울고 밖의 공기가 차가워서인지 기암 괴석이 수호신처럼 들러 쳐진 가운데서 즐기는 뜨거운 욕탕을 가히 환상적이다. 우리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고요한 겨울 숲 속의 적막을 마음껏 깬다. 밤하늘의 별들이 유독 청명하다.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온 몸이 따스해지면서 아득히 들리는 바닷물 소리, 바람결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는 세상의 모든 피로를 다 씻어줄 듯하다. 생태학적인 세계관은 이렇게 우리를 치유한다. 파라다이스여 영원하라!

Art House Project

‘Art House Project’는 미술관에서 좀 떨어져 전통 일본식 옛 가옥들이 밀집해있는 마을에 있다. 1998년 이후 현재까지 이미 Kadoya와 Minamidera의 2작업이 완성됐고 Kinja(Rei Naito)가 올 여름에 오픈을 앞두고 진행중이다. Tatsuo Miyajima의 Kadoya는 나오시마 Art House Project 의 첫 번째 작품이다. Kadoya는 지어진지 약 200년 된 나오시마 혼무라에선 가장 큰 오래된 가옥을 사용했다. 18c후반 이 마을에 엄청난 화재가 일어나 많은 가옥들이 손실되었고, 최근 Art House Project를 진행하면서 복구 개조하여 그 옛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Miyajima는 그 집의 본채 어스름한 내부 공간 마루에 8×9m정도 사각 모양의 홈을 나지막이 파서 물을 채우고 그 속에 방수 처리된 125개의 자그만 디지털 숫자판을 넣었다. 빨강, 초록, 노랑색의 디지털 숫자판은 하나는 1-9까지, 다른 하나는 1-99까지의 숫자로 그것은 마치 물속의 연꽃들이, 혹은 밤하늘의 별들이 활짝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무한히 반복, 변화하면서 순환되는 우리의 삶의 모습과도 같다. Miyajima의 동양적 세계관이 잘 반영된 아름다운 그 작품은 1988년 베니스 비엔날레 Aperto전에도 출품된바 있는 이다. 이외에도 Miyajima의 다른 3작품의 입구, 별채, 통로 등 그 집 곳곳에 영구적으로 설치되어있다. 그 집의 모든 관리는 완벽할 정도로 철저하다. 그것이 일본이다.

Minamidera는 여늬 Ando의 노출콘 크리트 작업과는 달리 나오시마 지역적 특성을 살려 그 지역의 나무를 검게 그을려 작업한 이색적이면서도 의미 있는 건축물이다. 그 속에 바로 James Turrell의 이 있다. Minamidera는 그 주변에 신사와 절이 밀접해 있는 지역이고 비로 그 장소 즈음에도 과거 절이 있던 자리라 한다. Minamidera는 소박한 마을 운동장이 있는 그런 장소에 위용 있게 서있다. 단층의 미니멀한 외관은 그 침묵의 분위기가 금욕적이면서도 동시에 마력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압도한다. 한편으론 그 놀라운 절제력에 일본 특유의 섬뜩한 기운이 감돌아 무섭기도 하다. 입구를 돌아 Minamidera안으로 들어갔으나 캄캄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10분이 지나고 , 20분…30분이 훨씬 흐르니 무언가 희미한 푸르스름한 비치 미세하게 감지되기 시작한다. 한편의 詩같고, 존재의 떨림 같으며, 무언의 푸른 우주 같다. 방안은 어느새 온통 비물질의 아우라로 가득하다. 근사한 느낌에 마음이 두근거린다. 기다리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노라니 마치 고요한 절간 부처 앞에서 마음을 닦아세우려고 하는 자세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에서의 명상을 체험해본다. 그것은 결국 기다리지 못해 빛(깨달음)을 볼 수 없다면 그들은 어둠의 자식들임을 침묵으로 은유하는가?

‘현대의 미술’, 세계의 미술관, 2001 여름호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