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ng Attached Bookshelves

Moving Attached Bookshelves

Moving Attached Bookselves

움직이는 붙박이장

유럽에서 10년을 넘게 활동해온 L씨가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얼마전에 가졌다. 타지생활이 어디나 그렇듯, 나는 대륙 땅에서는 동떨어진 섬에 살고 있지만, 유럽에서 미술을 하다보니 건너 건너 알게 되거나, 한두번쯤 큰 도시에서 만나기 일쑤여서, 나는 L씨가 성공적으로 유럽에서 활동을 해오는 것을 지켜보며 내심 뿌듯하고 부러웠다. 그의 살갗에 묻어있는 이방인의 냄새는, 내 옷에서 나는 냄새와 다르지 않아서, 나는 그의 끈질기고 두둑한 배짱과 고집스러운 행보가 대단해 보였는데, 그런 그가 한국에서 개인전을 열고, 아현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는 소식이다. 아마 유럽을 오가며, 활동을 하겠지만 늘 이도시 저도시를 떠돌던 L씨가 서울에 집을 구했다 하니 불현듯, 그의 소식에 나는 짐짓 발을 밟힌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방인의 때는 살살 벗겨내고, 10년쯤 타향 살이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다시 고향을 찾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그러기에, 나는 아직 싸울 것도 많이 남아 있는 것같고, 성취해야 할 것도, 약속한 것도 남은 것 같다. 적어도 금의환향하기에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집을 떠나기로 작정하고 떠난 것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나는 나의 집, 나의 고향을 빡빡 지우개로 지우고 있는 것만 같다.

얼마전에 어머니가 계신 파주 집에 있는 내방의 붙박이 장이 갑자기 쏟아져 부서져 내렸다고 한다. 그 붙박이 장은 내가 내인생 처음으로 내 방을 갖게 되었을 때, 먼 친척이 조그만 내 방의 크기에 맞게 짜준 것이었다. 나는 그 붙박이 장에 피아노 책도 꽂아넣고, 첫 영어사전도 꽂아 넣고, 수많은 편지들도 꽂아 넣었다. 엄마몰래 산, ‘북회귀선’ 소설책을 하얀포장지에 싸서 꽂아놨다가 들통이 나는 바람에 ‘외설소설책’을 읽은 죄로 된통 혼이 나기도 했다.

나는 그 붙박이장을 포기하지 못하고 파주집까지 끌고 갔는데, 파주집의 내 방은 그전방보다 커서 붙박이 장이 제 멋을 발휘하지 못했다. 파주집에 이사를 가자마자 나는 유학을 나왔으므로, 그방과 나와의 정은 별로 들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붙박이 장은 내 머릿속에서 항상 가장 중요한 나의 자산으로서, 그 붙박이 장이 있는 한은 일단 한국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붙박이 장이 이십년이 안되는 세월을 이겨내지 못하고 쏟아져 내려 버린 것이다.

내 책상위의 단단하고 두꺼운 유리는 깨져버렸음은 물론, 나의 붙박이 장에 들어있던 수많은 책들과 쪽지들과 쓸데없는 것들은 방바닥에 다 흩어져 버렸다고 한다. 다행이 동녘이는 화장실에 있어서, 위기를 모면했다고 했다. 하여튼 그래서, 나의 소지품들및 붙박이장, 그리고 책들의 행보는 이제 무자비한 엄마의 결정에 따라 버려지거나 어딘가에 처박히거나 결단을 기다리는 위기에 처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붙박이 장이 부서진것도 부서진 것이지만, 이제는 한국에 내방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 채, 영원히 ‘나의 방’ 을 찾을 수 없을것만 같은 런던의 조그만 플랏들을 전전하는 생활에 대하여, 못내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나의 미술이, 나의 작품세계가 부서져 버린 파주의 붙박이 장을 이어붙이려는 노력이 아닐까, 영구적인 내방을 가지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스스로를 점검하게 된다. 오랫동안 덮고 잔 이불처럼, 매일 입속에 넣은 수저처럼 익숙해져버린 풍경과, 손에 잘맞는 책들의 배열속에 나의 작업들이 스스로 진화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두렵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L 씨의 오랜 타지생활 끝에 타협한 아현동의 붙방이장을 생각하면, 모든 모험이 끝나고 실험적인 작업들의 행렬이 끝나고 나면 다시금 자기가 출발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체념도 든다.

나의 시각미술생산은 이러한 하루하루의 고민들과 그리 멀지 않다. 떠나온 곳을 멀리서 점검하기, 점검한 곳을 다시 떠나기, 쌓은 것들을 부수기, 부순 것으로 이야기를 만들기, 이야기를 만든 것에서 다시 사물을 바라보는 일련의 훈련들은, 다져진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고 낯설게 바라본 것들에서 반복되는 배열을 찾는 작업들이다.

나는 이야기 하기가 좋아서 문학을 사랑한다. 그렇지만 문학에서 건널 수 없는 시각적 상상력의 강을 건너고 싶었고, 그러기에 뉴미디어는 나에게 좋은 도구였다. 나는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하이퍼텍스트의 이야기 터널들이 마술적으로 느껴졌고, 영국으로 유학을 온후 인터렉티브 멀티미디어와 본격적으로 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의 작업의 핵심은 미디어를 어떻게 멋지게 다루는가로 전진하지 않고, 한국에 있을때는 느끼지 못했던, 힘의 이동과 글로벌 시대의 흰면과 까만면들을 미술의 눈을 통해서 바라보고, 디지털 시대의 내러티브를 분석하는 것으로 초점을 맞추어 갔다.

특히 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야생성, 인구의 이동과 이민문제를 넷아트로 구현하고 싶은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서유럽과 동유럽, 크게는 웨스트와 이스트의 보이지 않는 경계에 대하여 설명하고 싶다. 나의 작업은 문학에서 출발한 텍스트의 미학을 학습하는 구조로 시작한다. 텍스트는 상상력의 뼈대가 되며, 구체적인 내러티브를 가져온다. 그러한 이야기 구조를 다시 분산시키고 집합시키고 재구성하는데에 있어서 인터렉티브 멀티미디어는 문학이 다 표현하지 못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감각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 나는 이러한 전략을 다양한 작품을 통해 실험해 왔으며, 가까운 거리와 먼거리, 중심에 선 오브제와 바깥을 둘러싼 오브제, 밤과 낮, ‘여기’와 ‘거기’의 문제에 대해서 때로는 심각하게 때로는 유머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내 왔다.

나는 미술안에서 미술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에 한계를 두지 않고, 문학의 언어, 연극과 퍼포먼스의 언어, 음악의 언어, 컴퓨터 프로그램의 언어, 브랜드 가치의 언어, 디지털 내러티브의 다양한 모습들을 사용하여, 미술의 언어를 확장시키고 싶다. 나의 미술은, 어려운 말보다 사람과 가까이 있고 접촉할 수 있고, 대화가 가능한 작업이 될 것이다. 처음에는 마음을 사로잡는 표지가 아니더라도, 읽을 수록 빠져드는 모험소설처럼 말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유토피아의 조각들이 미래의 사진첩처럼 존재할 것이다. 나에게는 어쩌면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붙박이장’을 멋지게 만드는 것이 나의 구체적인 희망사항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미래의 영상속에 멋진 붙박이장도 부서져 내리는 장면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렇게 정착과 이주, 파괴와 재생산은 가슴과 등짝처럼 붙어서 함께 여행할 것이다.

* 사진은 2009년 8월 작업실 책장을 정리. 글은 2007년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