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c Arts: Too Close to whisper to you.

Morning, 속삭이는 중앙역. (주석1)

이 속에는 뭐가 들어있는거야?
- 살속에는 잉크가 들어있지. 잉크아래에는 피가 흐르고, 피가 흐르는 관옆에는 살이 있지. 살들은 뼈에 붙어 있고, 뼈는 내장을 감싸고 있지.

아니아니. 이속에는 커다란 엠프가 들어있나봐. 쿵. 쿵. 쿵. 자기 젖꼭지를 누르면 플레이가 되요. 쿵쿵. 쿵쿵. 쿵쿵.
- 안눌러도 플레이돼.

치치치. 멀리멀리 돌아서 이렇게 나에게 왔는데, 내가 눌러야만 플레이돼야지. 아무때나 플레이되면 어떻게.
- 멀리멀리 돌아서 오면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는 거야.

그런게 어딨어.
- 옆에 있지 않아도 버튼은 누를 수있어. 이렇게 가까이 있지 않아도 네 귀에 속삭여줄수도 있어. 중앙역에 가자.

Bleeker St 허물어진 카페 밑 지하에서 살던 그는 가끔씩 찾아와 응석을 부리는 나를 묵뚝뚝하게 받아주기 마련이었지만, 나는 차가운 독일인의 억양으로 조용히 대답해주는 그가 너무 좋아서 뉴욕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는 몸에 있는 많은 상처들이 다 어디에서 왔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피부 바깥의 상처보다 피부 내부에 있는 그의 깊은 근심은 늘 그를 짖누르는 것 같았다.
타들어가는 담배를 짖이기며 핸드폰에 달린 악세사리처럼 출렁이며 쫓아가는 나를 달고간 곳은 중앙역이었다. 그는 움푹 패인 천장의 둥그런 아치 밑에 나를 세워두고, 다른 한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그럼 그럼 나도 나도 얼릉 얼릉.” 이렇게 한번에 두번씩 단어를 붙여서 말을 하며, 그에게 무엇인가 속삭여달라고 바짝 바짝 귀찮게 굴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가 나를 뒷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의자에 쓸려 떨어져 나가도 뒤돌아서 찾아보지 않는 악세사리가 될까봐, 나는 그에게 나의 존재를 계속해서 각인시켜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귀를 바짝 대고 그가 무엇인가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Afternoon, 노래를 부르는 나무. (주석2)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야?
- 아니야. 나뭇잎은 나무에 하나도 달려있지 않아.

그럼 바람이 불면 가지에 부딪혀서 나는 소리야?
- 아니야. 바람은 가지에 부딪히지 않고 통과해서 지나가.

그럼 화가 나면 노래는 부르지 않고 소리를 질러?
- 아니. 화가 나면 더더욱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어디에 가면 그 나무를 볼 수 있어?
- 그 나무는 잉글랜드의 북서쪽에 있어. 페닌스(Pennines) 라는 야트막한 산맥을 이루는 마을에 있어. 번리 (Burnley) 라는 마을을 바라보고 있지.

그럼 정말정말 존재하는 거야?
- 그럼. 가서 만져볼 수도 있어. 가서 바람을 불어주어.

하고많은 아티스트들 중 그도 한사람이었다. 그는 굳이 아티스트라고 소개하기 보다는 ‘조각가’라고 소개를 하였는데, 그렇다고 조각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가 만든 집모형이나 이상한 모양의 의자들은 대부분 쓸데없는 식물의 잔해들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냄새가 나고 금방 무너져버렸다. 하고많은 갤러리들 중에 그를 찾아준다는 곳은 없었다. 그가 조금만 영특했더라면, 간혹 열리는 아티스트 네트워크나 큐레이터 만남의 자리에 나갈 법도 한데 그는 생활의 방식과 꿈의 방식을 이어나가는 기술을 알지 못했다. 아마도 그에게는 도드라지기 위해서 자신의 여드름을 터트려 나가듯이 치열하게 덤벼야 하는 뉴욕의 예술가보다는, 간판없는 책방에서 일련번호를 달며 넓은 창문이 있는 책방 2층 스튜디오에서 마음껏 흙을 뿌려댈 수 있는 실험적인 베를린의 예술가가 되었어야 옳았을지 모르겠다.

그가 알려준 그 노래를 부르는 나무를 실제로 찾아가게 된 것은 지난 겨울이었다. 나무는 그가 만든 식물의 잔해처럼 시시한 껍질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강력한 철제구조물로 만들어져 있었다. 더군다나 내가 생각했던 낭만적인 모습의 자상한 노래하는 나무가 아니라, 겁이 날만큼 무섭게 지어진 회오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눈을 감으면 그 노래만은 그가 말했던 것처럼 고운 목소리였다.

Evening, 돌아 돌아 너의 귓속으로.

졸린. 마음속으로 말해도 들을 수 있어?
- 마음 속으로 말했는데 어떻게 들어. 목구멍으로 소리를 내야 들을 수가 있지.

마음 속으로 말해도 들을 수 있어야돼 이제.
- 싫어 싫어. 배에 힘을 주고, 주먹을 꽉 쥐고 소리쳐줘.

난 그럴 힘이 없어.
- 아냐. 내가 시금치를 많이 넣고 요리해줄께. 네가 좋아하는 파인애플 넣은 피자도 이제 잘 먹을께.

그래도 안되겠어.
- 어디가. 나도 따라갈래.

지겨워 이러지마.
- 하나도 안지겨워. 가만히 있을께. 응 응 응?

그러니까 마음으로 말해도 들을 수 있어야돼.
- 어떻게.

나는 그가 왜 갑자기 Bleeker St 에 있는 지하실을 버리고 도망갔는지 알지 못한다. 그는 나에게 이상한 그림과 주소만을 던져주고 봄에 피는 꽃들처럼 화사한 모습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나는 그 이후로, 봄이 되어도 꽃이 좀처럼 피지 않고, 겨울이 되어도 꽃들이 좀처럼 시들지 않는 습하고 어두운 도시 런던으로 돌아와, 두번씩 말하는 습관을 버리고 다른 런더너들처럼 삶을 등에 지고 무겁지 않은 척하며 지내왔다.

식물의 잔해들과 뭉친 먼지들로 형체를 만들어내던 기억속에 그가 다시 내 마음을 찾아온 것은 그의 ICA 전시 때문이었다. 뉴욕을 흔들기에 미미해보였던 그의 아트는 어느새 콧대높은 유럽을 건드리고 있었다. 나는 잡지의 아트 꼭지를 채우기 위해 리서치를 하다, 나는 풀어내야 할 숙제처럼 비행기를 타고 동독일을 향하였다.

콜리츠 (Görlitz) 에서 차를 타고 주소를 쥐고 도착한 곳은 허허벌판이었다. 허허벌판 가까이 호수가 있고, 멀지 않은 곳에 공장 굴뚝이 보였다. 언젠가는 공장지대였을 것이고, 이 산업도시는 통일이후에 어떤 산통을 겪으며 이렇게 허허벌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무엇이 있길래, 이것이 나를 버리고 던져주어야 했던 이유가 되었을까.

조금 걸어가니, 나는 야트막한 언덕을 볼 수 있었다. 언덕을 따라서 원형을 그리며 올라가니, 나는 다시 언덕에서 내려와 평지에 있고, 평지에 있는줄 알았더니 다시 언덕으로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내가 걸어가고 있는 곳은, 땅에 있는 거대한 귀였다. 거대한 귀를 타고, 나는 귓바퀴를 돌아서 대답을 안다고 해서 이해가 가지 않고, 이해를 한다고 해서 용서를 할 수는 없는 과거의 연인의 숙제를 풀어내기 위해 서있는 것이었다.

원모양을 그리며 언덕을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 동안, 어느 노부부가 천천히 내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두고 걸어가고 있었다. 귓바퀴의 끝에는 오픈 씨어터가 있었다. 나는 그 위로 가서 귀를 대고 누웠다. 나는 대지에 붙어 있는 그의 귀에 내 귀를 대고 그가 하려고 했던 말을 들으려 했다. (주석3)

바람소리와 공장의 기계 소리가 들리고, 노부부의 독일말 소리가 들렸다. 마치 지구가 아니라 화성에서 들려오는 조화의 소리들 같았다. 가보지 못한 곳에서도 낯선 음성들은 작고 낮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이제는 아픈 마음도 설레는 마음도 다 지난 후여서, 울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의 아픔들을 안아주지 못했던 스무살 시절의 일들이 거대한 건축물 앞에서 작게만 느껴지는 것이 쓸쓸하였다. 추억속에서만 남아있는 상처들은 한번의 여행으로 치유될 수는 없겠지. 그에게 조를 수 없었던 많은 대답들은 그시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군데군데 숨겨져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주석1)
1913년 처음 개장한, 뉴욕 중앙역 터미널 안 비밀통신시스템, 속삭이는 갤러리.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난간쪽 오이스터 바 앞에 있으며 구스타비노 타일로 만들어진 아치형의 건축이다. 아치의 한쪽에서 이야기를 하면 다른 한쪽 코너에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본래 이러한 기능을 가지기 위하여 건축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속삭이는 갤러리 아치형의 건축물은 다른 세계 곳곳에서도 만나 볼 수 있다. 아일랜드 County Offaly 의 Shannon 강둑, Clonmacnoise라고 불리는 종교건축물, 미국 미주리 주의 St Louis Union 역안의 하야트 호텔로 이어지는 계단에도 13미터에 달하는 속삭이는 아치가 있으며, 구 동독일 Görlitz 지역의 성문에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벽에 비밀을 불어넣는 속삭이는 장소가 있다.

주석2)
Singing Ringing Tree (Panopticons) : 파이프로 만든 뮤지컬 조각으로 2006에 랑카셔 지방의 Pennines (잉글랜드 북서쪽) 에 완공되었으며, Mike Tonkin 과 Anna Liu, 두 건축가가 디자인하였다. 영국내에서 찾아가는 방법: Burnley 에서 Rawtenstall 을 가는 길에 A682 도로를 타고 가다가 The Bull pub 이 보이면 반대편으로 꺾어져 왼쪽으로 들어가면 나무조각이 바로 보인다. 근처에 주차장이 있으며 나무까지 가는 길은 다소 거칠다. 유튜브에서 비디오를 찾아볼 수 있다.

주석3)
탄광이 모여있는 독일의 복스버그 (Boxberg) 는 통일이 되기 전에는 70퍼센트의 에너지를 생산하는 곳으로, 통일이후에는 대부분 자연 에너지로 대체되면서 100,000명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2003년 Baerwalder Lake Lnadscape Park 를 건설하는 일부로 이지역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재계발을 상징하는 공모전에서 아티스트 Jarosław Kozakiewicz의 해부학 강당의 원리를 딴, 화성 프로젝트 (The Mars Projects) 가 당선되어 130 제곱키로미터에 해당하는 평야에 귀모양의 오픈 에어 씨어터를 건축하였다. 귓바퀴의 원리와 같이 이 건축물은 소리들을 집합시켜 확장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100년동안 산업 소음을 들어야 했던 이지역의 대지를 침묵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