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rica Antarctica

Bathroom.

샤 워를 하고 나오니 불은 다 꺼져 있었다. 아마도 그녀가 집에 돌아왔나보다. 그녀는 피로하게 침대에 쓰러져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머리를 드라이어로 말리지 못하고, 아마 젖은채로 옆에 웅크려 자야 할 것이다. 샤워할때 인기척도 못들었는데, 그녀는 조용히 들어왔나보다.

어느날 늦은 마감날, 아침이 되는지도 모르고 책상에 잠들어 있다가 아침일찍 청소를 하러 사무실에 들어온 모지를 만났다. 모지는 길고 거친 손가락으로 대걸레를 밀면서 궁둥이를 내밀며 내쪽으로 뒷걸음쳐 들어왔다. 나는 그녀의 얼굴보다도 궁둥이먼저 만나게 되었다. 청바지에 하얀 면티를 입은 그녀의 검고 길고 거친 손가락이 나뭇가지들처럼 보였다. 나는 피곤과 레드불에 살짝 취해 있었는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Black…’

‘Pardon? ‘

‘Oh, sorry, I need a black coffee.’

‘Go and get it then’

아 주 작은 소리로 말한 것 같았는데, 그녀는 아마도 내가 사무실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내말을 들었다. 괜히 그녀에게 실례를 한 것 같아,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겨 나왔다. 블랙커피를 사마시면서 정신을 차리던 와중에, 핸드폰을 찾을수가 없었다. 어딘가 나의 큰 가방 구석에 짖눌려 있나 하여, 벨소리를 들어 찾으려 공중전화에서 내번호로 전화를 걸어봤다. 그런데, 그 전화를 받은 것은 모지였다.

그렇게 모지와 인연이 되었고, 나는 그녀의 검고 거친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들에 매료되어, 월세집에서 쫓겨나는 처지에 있는 모지에게 같이 살자도 한 것이 몇달이 되었다. 모지는 잡지사에서 뭘 안다고 깝죽대는 선배들보다도 더 박식하고 해박했다. 그녀에겐 마땅히 학교라는 울타리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대신 글에 대한 열정, 역사에 대한 불신, 신화에 대한 호기심이 그녀를 더 밝게 비추는 것 같았다. 모지의 아프리카는 모지도 모르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단단히 속해있어 빠져나올 수 없는 대륙이었다. 모지에게는, 매를 맞아 발바닥이 다 벗겨지고, 뛸 수 없도록 인대근육을 잘라버린 처참한 노예시절의 가족사가 가까이 숨쉬고 있었다. 그녀가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일들에 대해서, 모지도 나름대로 모른척하며 지낸다고 생각했다. 런던생활에 익숙해질만도 하였는데, 좀처럼 삶이 쉽지는 않은 것 같았다. 모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무실 청소, 가정집 청소, 공원청소까지 세군데의 아르바이트를 뛰고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서로에게 매료되었던 것은 아마 잠깐이었을까. 나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점점 내게서 떨어져 나가는 그녀를 주워 담을 수가 없다.

Bedroom.

‘You here?’

‘…’

‘baby?’

‘You always can’t see me, can you?’

물 을 뚝뚝 흘리며 방에 들어왔다. 껌껌했다. 그녀의 검은 팔이 펭귄의 살갗처럼 반짝거렸다. 그녀의 피부는 양쪽에서 근육을 붙들고 있는 것처럼 팽팽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늘 바세린과 니베아 크림을 가지고 다니면서, 마르는 피부를 달래주어야 했다. 그래도 곧잘 그녀의 손은 금방 나뭇가지처럼 말라버리기 일쑤였다. 그녀는 런던을 떠나고 싶어 했다. 만원기차를 타고, 비싼 물가에 허덕이며 지내는 도시생활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항해를 하고 싶어했다. 그는 집에 오면 약초를 말아 피웠다. 그리곤 침대에 엎어져서, 여긴 깊고 깊은 바닷속, 나는 둥둥 떠서 남극까지 가야지. 물개처럼 물속을 날듯이, 헤엄쳐가서 남극까지 가야지 하고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런 그녀 옆에서 손가락을 하나하나 붙잡고, 나도 같이가, 했지만, 그녀는 약초에 취해서 벌써 저멀리 검은 바다속으로 흘러들어 간 것 같았다. 그는 영국에서 남극까지 가는 방법을 지도에 여러번 그려넣었다. 빨간색으로, 파란색으로, 노란색으로. 색깔들이 다 다른 이유는, 다른 시간에 갈 경우, 대륙들은 움직이고 있을 것이라, 항해 경로를 변경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타올을 붙잡고 침대끝에 앉아 그녀의 마른 발바닥을 문질렀다. 그녀는 관계에 길들여 지지도 않고, ‘우리’ 사이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녀와 그녀의 꿈들은 나와 상관없이 이미 여행자처럼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어쩐지, 내가 남겨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력한 책임감이 들었다. 나는 껌껌한 방안에서, 차마 말할 수 없는 마침표를 마음속에 꼭 꼭 꼭 찍어넣으면서, 그녀의 발을 만졌다.

‘Suck my toes.’

그녀의 발가락들은 뜨거웠다. 입속에서, 거친 표면들이 느껴졌다.
힘없이, 발가락은 조금씩 소스라치며 내 입속에 가만히 있었다. 두시간동안 넘도록 잠수할 수 있는 물개들처럼.

Outside.

먼지들이 어디에서 날려오지 않고, 가만히 공기중에 떠 있을 때.
아주 오래전, 남극과 아프리카가 같은 대륙이었을 때.
영혼이 값진 것이기도, 몇푼하지 않는 것이기도 한 가엾은 것일 떄.
누구도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사거나 팔지 않는, 공평한 세상이었을 때.
눈부신 것이 하얀색이 아니었을 때.
뜨거운 것이 태양만이 아니고, 하늘이 파란색이 아니었을 때.
날 것의 사랑이 무겁지 않고, 힘이 들지 않았을 때.

과 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고, 마음속의 소망도 아닌 어떤날을 향해서 모지는 끝내 떠나갔다. 그날 아침에, 그녀는 Nina Simone 을 크게 틀어놓았다. 그리고 우유에 기네스를 섞어 기네스 펀치를 한병 만들어 주었다. 그 이상씁쓸한 모지가 좋아한 음료수는 모지가 기분이 좋을때 만들어 먹던 것이었다. 어렸을 적, 주말이면 엄마가 만들어주던 음료수였다고 한다. 그녀는 아마도 잠시의 휴식처를 떠나는 것이 매우 신나고 즐거웠던 모양이다. 나는 남겨지면서도 그녀의 박차고 나가는 물살이 반가웠다. 멀리가라.

집도 없고 신발도 없어. 돈도 없고 계급도 없고, 친구도 없고 학교도 없어. 옷도 없고 일도 없어. 남자도 없어.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어. 애들도 없어. 땅도 없고 물도 없고, 차표도 없고 동전도 없고, 사랑도 없어.

내 게 머리카락은 있지. 내 머리도 있고. 두뇌도 있고. 귀도 있고,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입도 있고 웃음도 있어. 혀도 었고 턱도 있고, 목도 있고 젖꼭지도 있지. 마음도 있고 영혼도 있어. 등도 있고, 섹스도 있지. 팔도 있고 손도 있어. 손가락도 있고 다리도 있어. 발도 있고 발가락도 있고, 간도 있고, 피도 있지.

나에겐 삶이 있지. 삶이.

이번 에피소드는 극작가이자 연극배우인 Mojisola Adebayo의 모놀로그, Moj of the Antarctic: An African Odyssey (Performed at Oval House, 2007, 2008, Funded by British Council) 의 상상외전이다. 이 연극은 실제 존재했던 인물, Ellen Craft (c. 1826 – c. 1897) 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모티브로 하였다. 그는 미국 조지아의 노예제도에 묶여 있다가 탈출하여, 인권운동에 참여하였고, 남편을 자신의 노예로 가장하고 백인남자로서 가장하여 영국에 와 자유운동을 계속하였다. 그녀의 성, 젠더, 계급, 인종차별을 둘러싼 시도와 이야기들이 출발점이 되어 An African Odyssey 가 쓰여졌으며, 이 글은 다시 이 연극이 씌여지기 이전의Moj 를 만나 남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