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Oxytocin
1. Streets
너를 처음 본 것은, 바람이 몹시 불고 비가 내리는 퇴근시간 패링던에서.
너는 A4 종이 뭉치를 놓쳐버려서, 허둥지둥하고 있었지. 바닥을 쓸며 종이들을 집어냈지만, 바람이 심하게 불었어. 템즈에서 불어와 직통으로 통하는 패링던을 지나가는 바람은 높은 건물들에 부딪혀, 도시안에서 핀볼게임을 하는듯 이리저리 종이들을 날려보냈어. 너는 놓친 종이 뭉치때문에 화가 나 있었고, 어쩔 줄 몰라했어. 퇴근길의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너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나는 자리를 떠나갈 수가 없었지. 너에게 종이를 집어줄 수도 없었지만, 너의 흔들리는 팔다리와, 이리저리 흩어지는 종이들과, 구멍난 스타킹을 빠져나올 수가 없었어.
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고 있는 지붕 없는 정류장에서.
나는 149번 버스 안에서 로이신 머피의 overpowered 를 들으며, 메트로를 읽고 있었고, 너는 검붉고 파란 캔버스를 들고 움직이지 않고 자리에서 떠나지 않았어. 물감이 옷에 묻어 번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미안하고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어. 아마도 너는 런던 브리지로 가지 않는지, 버스를 타지 않았어. 문이 열릴 때, 그냥 너를 버스 안으로 잡아 끌어, 젖은 너를 닦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어. 너도 혹시 원했을까? 나는 빗속에서 너의 파란눈을 마주친 것을 기억해. 그순간 너의 눈속으로 들어가버린 것 같애.
2. Bar
마감을 앞두고 시름시름 감기가 걸리는 것은 이제 새로운 일도 아니다. 시험을 앞두고, 갑자기 옷장정리, 헤어진 연인에게 편지쓰기, 갑자기 손톱마저 깎고 싶어지는 이 현실도피의 심정은, 이렇게 다 큰 나이가 되어서까지 몸에서 스며나오는가 보다. 나는 땀에 젖어 살에 부딪히는 흰색 나이트 가운을 입고 이불 속에서 원고 걱정을 하고 있다. 밤은 깊고 정적이 나를 불러내는 것 같았지만 달리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지나친 음주가무로 인해 jaguar shoes (shoreditch 에 위치한 바, 졸린 다이어리 1편 참고) 의 파트타이머들과 자주오는 단골 손님들과 주고 받은 명함만 여러장, 영화티켓, 전기세 고지서, 쓰다만 원고들이 책상위에 어지럽혀 있다. 머릿속은 텅 비었는데, 마음은 서늘하고 몸은 춥고 떨리는 와중에 생각난 것은 ‘폴’이었다. 폴, 내 일상과는 동떨어진 이름. 몇달 전, 늦은 밤 재규어 슈즈에 나타난 외로운 청년들 사이에, 중년의 소년이 머뭇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술김에 그를 끌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발꿈치를 들어 그의 귓볼을 깨물기 시작했다. 그는 정신없고 술에 취한 나의 몸짓을 그의 옷에서 오일냄새가 났다. 무릎이 다 까지도록 그를 열심히 빨아댔다. 스타킹의 구멍이 더 커져서 무릎이 다 보였다, Whatever. 그날은 더군다나 길거리에서 초고 뭉치를 놓치는 바람에 에디터에게 단단히 욕을 얻어먹은 날이었다. 아마도, 마음속에 불만이 이상한 방식으로 터져나왔는가 보다. 나는 기진맥진한 폴을 골목에 세워두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can I know your name?
나 는 그에게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이후로도 나는 폴을 자주 보게 되었다. 사실 그의 이름은 폴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한 500년쯤 오래된듯한 폴스미스 자켓을 언제나 입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 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친구를 데리고 온적도 없고, 달리 다른 손님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누군가 발을 밝고 지나가며 I’m sorry, Sir. 라고 말했다. 그리곤 저들끼리 킥킥거리기도 했다. 그는 이 이스트 런던의 전쟁도 없이 갈곳이 없고 희망이 없는 나같은 젊은 애들하고는 영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꾸준히 나타났다. 나는 그를 만날 때마다 그를 골목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상하게 나는 어떻게든 암사자의 눈에 들어보려는 웅대한 자신감을 가진 젊은 숫사자들에게 관심이 가질 않았다. 그는 사냥을 할 무기도 없고, 욕망도 없는, 정글에 세워진 큰 나무 같았다. 나는 그 나무에 몸을 이리저리 비벼대고 싶었다. 그를 다시 골목으로 잡아끌어 데리고 들어갔다.
그의 손은 거칠게 나를 탐하기 시작했다. 그는 열심히 가슴만 만졌다. 무언가 다른 일도 일어날 수도 있었는데, 그는 다른 부위에는 별로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여러번, 대화없이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는 주로 그를 빨아주고, 그는 나의 가슴을 애무했다. 그가 가까이 오면 올수록 나는 그의 힘의 반대방향으로 뛰어나가고 싶었다. 그는 빛바랜 파란색의 얼굴을 하고 총천연색을 염원하는 나의 심장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뇌속으로 파란색의 옥시토신이 스며나와 온몸의 구멍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에게 더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3. Streets, again
어느날 골목안의 애무가 끝나고 그는 명함을 건네주었다. 나는 주머니 어딘가에 구겨 넣고 있었다가, 집에 와서 주머닛속을 털어냈다. 그리고, 마감을 앞두고 감기에 걸린 이 와중에 나는 그 명함을 찾아낸 것이다. 명함에는 스튜디오 주소가 적혀 있었다. 재규어 슈즈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곳의 아트 스튜디오였다. 쥐가 들끓는대도 별로 놀라지 않을만큼 지저분한 건물이었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꽤 열심히 작업한 흔적이 있는 스튜디오들이 있었다. 나는 손수건으로 콧물을 닦아내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그의 스튜디오방은 이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폴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다 만 페인팅들이 복도에 다 나와 있었다.
where is he?
he’s gone.
where to?
well, let’s hope it’s heaven?
두 명의 숫사자들이 표정없이 짐을 내놓고 있었다. 나의 나무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이름도 모르고, 친분도 없는, 몇번 골목에서 욕정을 나눈 중년의 남자의 돌연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코끝이 빨개진 것은 슬퍼서라기 보다는 감기 때문이었는데, 숫사자 한놈이 나에게 are you his girl? 라고 물었다. 나는 퀭해진 빨간 눈을 꿈뻑하였다. 숫사자 한놈은 나에게 캔버스를 건넸다. take it. it’s going to worth it soon. 나는 그를 모른다. 그의 오일냄새와, 그의 맛과, 그의 머리카락은 익숙하지만, 그의 그림과 그의 죽음과 그의 삶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림을 들고 스튜디오로 빠져나오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oxytocin
어원은 그리스어로 ‘일찍 태어나다 (quick birth)’라는 의미로 자궁수축 호르몬이라고도 하며 뇌하수체 후엽 호르몬의 일종이다. 여성의 가슴을 애무할 때, 혹은 아기가 젖을 빨 때, 출산할 때 분비된다. 또, 옥시토신은 두려움 처리 부위의 연결을 약화시키고 활동을 낮춰줌으로써 신뢰성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이는 사회공포증(social phobia), 자폐증(autism), 정신분열증(schizophrenia) 같은 사회공포와 편도선 기능장애가 포함된 것으로 생각되는 질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 이 글은 블링에 실린 글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