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아 & Wilhelm Sasnal
모서리 없는 순간들. 한해가 가는 시기에 의례 하는 일이 한해동안의 하이라이트를 정리하고 내년의 굵직한 아웃라인을 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어디 사람사는 일이 그렇게 흥분과 분명한 하이라이트 속에 진행되는가? 그순간의 감동과 서사를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깨닫해주는 것은 나 자신 이외의 타인들이 내밷는 여러가지 노이즈들에 의해 선명해진다. 영화는 시각적, 청각적인 논리를 전개하며 구체적인 서사로 마음을 흔들어 울고 웃게 할 수 있지만, 그림은 그런 클라이막스를 주는 것이 아니라 보일듯 말듯한 시각적 진동을 준다. 그래서, 회화작업을 볼 때, 나는 늘 조금 망설이게 된다. 가까이에서 봐야 하나. 멀리에서 봐야 하나. 색깔을 봐야 하나, 선을 봐야 하나.
아마 이런 일차적인 망설임과 작가로서의 조심스러움 사이에, 내가 회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묶여 있는 것 같다. 지난겨울에서 올해 겨울까지 인상깊었던 전시 중, 박진아와 윌렘 사스날의 그림들이 그런 모서리 없는 내밀한 인생의 순간들을 보여줬다.
박진아의 그림에는 ‘바라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의 leisure, excursion, snap life 전시 등에는, 뒷모습을 보이는 사람들, 갤러리에서 그림을 걸고 있는 사람들, 그림을 어디에 걸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진아의 그림 속에 사람들은 그 순간에 젖어 있거나,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다. 이런 나를 그려달라 애교를 떨거나 예쁘게 보이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박진아의 그림을 주변의 ‘찰나성’을 표현했고, 스냅한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현대적인 이미지라 하는데, 이런 말들은 잘 모르겠고, 나는 일단 박진아의 어둡고 건성건성한 표현이 좋다. 그의 그림들에 나오는 바라보는 사람들 속에 내가 있는 것 같고, 작가는 내 뒤에서 또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만 같다. 2010년 겨울, 성곡미술관에서 그의 작업을 찬찬히 볼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미술관보다 그의 작업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 흠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작업에 걸맞게 조명을 좀 낮춰준다던가 벽페인트를 조금 어둡게 했더라면, 그의 세계로 더 빨려 들어갈 수 있었을텐데. 작가는 전시를 하고나면 늘 이런저런 요구와 충고를 받게된다. 일부는 작업에 쓸모있고, 일부는 그렇지 않다. 아마도, 이런 나의 관객으로서의 제안도, 실제 그의 작품세계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작가는 생경한 갤러리 내부와, 블랙홀 같은 자신의 그림의 병치가 마음에 들었을 수도 있다. 또, 그의 그림의 사람들은 나른하고 졸리워 보이거나, 아니면 골똘히 생각하는 가운데 넋을 잃어버린, 혹은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멍함 등이 있다. 그래서 그림안의 인물들 보다 주어진 상황이나 작가의 선택에 주시하게 된다. 당시 성곡미술관에 갔을 때, 박진아의 그림들이 너무 좋아 같은 시기에 옆 건물에서 열렸던 박화영의 전시는 잔뜩 멋만 냈다는 인상을 받았다. 회화는 간혹, 이렇게 설치/미디어 미술을 당혹스럽게 할 때가 있다. 작업방식에 높고 낮음을 따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회화가 감동을 줄 때, 그 기억이 오래 남는 것도 아직 미술을 이해하는 방식이 시각에 한정되어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웰럼 사스날의 그림도 박진아의 표현처럼, 어딘가 어수룩하고 어둡고 간결한 면이 있다. 그에게는 정면을 바라보는 사람, 작가에게 잘보이려고 잘 포즈를 취한 사람도 종종 있다. 사스날은 이러한 애교들을 보기좋게 무시하고, 팔다리를 간결하게 처리한다던가, 얼굴을 짖뭉갠다던가, 굵은 붓으로 대충대충 처리할 때가 있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건, 빛과 그림자다. 그의 그림속에는, 물에 비친 낡은 건물, 거울, 그림자, 석양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의 실루엣, 그런 것들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그의 인물들의 가장자리에는 늘 선이 없다. 2011년 9월에, 화이트채플에서 있었던 사스날 전시는 미안하지만 세일 프리젠테이션처럼 느껴졌다. 그의 그림들은 어둡고 진하다가도, 어딘가 패셔너블하게 느껴진다. 1층은 그림 크기도 크고,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할만한 것이 많았는데, 정작 내가 눈여겨 본 것은 초기의 작업들을 전시해놓은 2층이었다. 2층은 인기가 없는지, 그나마 비디오 작업이 재생되지 않는 스크린도 있었다. 그림들은 모두 작은 사이즈이고, 표현기술 또한 단순하고 소재도 1층에 비해 다양하지 않았지만, 그의 초기작에는 훨씬 날카로운 작가의 시선과, 그것을 감미롭게 풀어낸 과정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키스하는 장면을 클로즈업하여 찍은 비디오는 그림자만으로 표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세한 움직임이 회화로 옮겨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비디오를 보고 난 이후에, 다른 그림들이 다 조금씩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박진아와 사스날이 함께 2인전 전시를 하면 멋진 전시가 될 것이다. 박진아의 그림에는 상황이 존재하고, 사스날의 그림에는 특정한 사람들과 그에 대한 기억이 살아있다. 서로 다른 시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같은 시간에 그려졌거나, 같은 온도에 그려졌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위의 두 그림에서 보면 밤새 월광욕을 한 사람들이 (박진아의 그림) 다음날 옷을 다 벗어놓고 어디론가 가버렸을 것 (사스날)이란 내러티브가 그려진다.
평소 좋아하는 회화작가중에, 언젠가 영국에서 살 수 있는 제일 큰 종이를 사다달라는 사람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그만한 크기는 구할 수 있다 하여, 별 도움은 안되었다. 그는 장미, 앵두 같은 것을 따다가 그 큰 종이에 문지르는 작가였는데, 작업에 늘 몰두하고 있어 세상이나 사회를 늘 낯설어 했다. 물론, 그의 작업들은 일찍부터 사람들이 알아봤고, 머지않아 큰 갤러리로 옮겨갔다. 그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얕보거나 이해하지 못할 때면 그는 늘 크게 실망하고 괴로워했다. 그가 처음 작업을 팔 때에, 그가 작업의 가격을 책정하기 위해서 산출한 노동력의 댓가는 그가 작업에 몰두하는 시간, 그의 실력과 학력, 그가 포기해야 하는 다른 일들을 조리있게 적어 계산한 것이었다. 회화작가에겐, 빈 캔버스의 공포와 맞서야 하는 특별한 자기수련과정이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미디어를 쓰는 작가들도, 빈 공책에, 깨끗한 바탕화면에, 의미없는 돌무더기에 ‘텅빈 것을 의미있게’ 만들려는 과정은 포함되어 있다. 다만, 그림은 단순하고 기본적인 방법만으로 겹겹의 공감각적인 층위를 재현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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